본문 바로가기
지역 기반 희귀 민속 축제

충북 옥천 묘목축제

by around-the-worlds 2025. 7. 17.

충북 옥천 묘목축제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의 땅 사랑

1. 뿌리내린 시간의 가치: 옥천과 묘목산업의 뿌리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은 전국 묘목 생산의 중심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사과, 배, 자두, 복숭아, 대추, 감나무는 물론 장미, 단풍나무, 블루베리 묘목 등 다양한 수목과 과수를 재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묘목 집산지로 자리 잡았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열리는 **‘옥천 묘목축제’**는 2000년대 초반에 지역 특화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농민, 소비자, 유통 관계자, 도시민이 한자리에 모이는 묘목 산업의 문화적 장터로 발전했다.

옥천의 묘목 산업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지역 어르신들의 한평생에 걸친 땅 사랑과 나무 사랑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히 묘목을 생산하는 농업인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나무가 뿌리를 내릴 흙의 성질과 물의 흐름,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하며 토양을 이해하고 다루는 장인으로 살아왔다. 그들의 삶은 단지 농업 노동이 아닌, 자연과의 대화이며 세월과의 협상이다. 이러한 역사와 철학이 묻어 있는 축제가 바로 옥천 묘목축제다.

 

충북 옥천 묘목축제

 

 

2. 축제장에서 만난 장인들, 그들이 들려준 흙의 언어

묘목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현장에서 직접 묘목을 판매하고 설명하는 지역 농민들, 그중에서도 60대 이상 고령의 ‘노(老) 장인’들이다. 이들은 방문객에게 묘목 종류를 설명할 때 단순히 “예쁘다”거나 “잘 자란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건 사질토보단 점질토에 더 잘 맞아”, “남향 밭에 두면 서리 피해를 덜 입는다”, “물 빠짐이 너무 좋으면 뿌리 고사 날 수 있다”는 식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언어로 나무를 설명한다.

이러한 장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묘목 하나를 재배하기까지 어떤 철학과 감각이 녹아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한 사과나무 농장을 운영하는 70대 농부는 “묘목은 아이 키우는 거랑 똑같아요. 뿌리내릴 곳을 잘 골라줘야 하고, 바람 센 날은 감싸줘야 하고, 비 온 날엔 흙이 눅눅해졌는지 발로 밟아줘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그 말 한마디에 묘목을 단지 ‘판매 상품’으로만 보던 도시민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나무를 키우는 일이 자연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현장 철학자’들의 말에는 땅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녹아 있다. 그들이 단단한 손으로 묘목을 고르며 흙을 쥐는 순간,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선택하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3. 묘목축제의 구성과 지역공동체 문화의 복원

옥천 묘목축제는 단지 나무를 사고파는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축제는 지역 공동체와 자연환경의 공존을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행사장은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묘목 직거래 장터 외에도 묘목 관리 교육관, 토양 검사 부스, 전통 농기구 체험존, 어린이 화분 만들기 체험장 등이 운영된다. 그중 가장 많은 참여가 이루어지는 부스는 ‘묘목 상담소’다. 이곳에서는 고령의 농민들이 ‘묘목 상담 선생님’으로 참여하여 방문객에게 알맞은 나무 고르는 법, 심는 시기, 물 주는 주기 등을 상담해 준다.

또한 지역 농산물도 함께 판매되는데, 이는 묘목 산업과 전통 농업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축제 기간 동안 열린 장터에서는 직접 재배한 감자, 마늘, 고추, 꿀 등을 소량으로 판매하며, 일부 마을에서는 묘목을 구매한 이들을 대상으로 마을 텃밭 분양까지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지역의 생산 생태계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축제를 통해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오랜만에 손주를 데리고 행사장을 찾은 어르신들은 마치 젊은 시절 장터에서 친구들과 만났던 추억을 되새기듯이 축제를 즐긴다. 이는 단순한 농산물 판매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과거 기억과 현재 자부심이 만나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다.

4. 도시와 농촌을 잇는 묘목의 사회적 의미

옥천 묘목축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도시와 농촌이 ‘나무’를 매개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도시민에게 묘목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블루베리를 키우고, 옥상 텃밭에 라벤더를 심으며, 작은 화분 하나에도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은 욕망’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도시민들이 옥천에 와서 직접 땅을 밟고 묘목을 고르며, 땅에 뿌리내릴 나무를 손에 쥐는 경험은 심리적 전환점이 된다.

실제로 축제를 통해 많은 도시민들이 귀농을 결심하거나, 세컨드 하우스용 텃밭 조성, 주말 농장 개설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옥천군은 이를 반영하여 묘목축제와 연계한 귀촌 체험 프로그램, 농지 임대 안내, 귀농 설명회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농촌 정주 인구 유입에 실질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묘목은 단순한 식물체가 아니라 삶의 주기와 사람 간 연결의 은유다. 한 그루의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시간을 따라 꽃과 열매를 맺는다. 이는 곧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 가족과 사회가 형성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 묘목을 키운다는 것은 단지 녹지를 조성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애정을 일상에 심는 일이 된다.

5. 할아버지들의 손끝에서 배운 땅 사랑, 그리고 축제의 미래

옥천 묘목축제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은 농업인이자 생태철학자이며, 공동체의 기록자다. 이들은 평생을 흙과 살아온 사람들로서, 나무를 통해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의 손은 투박하지만, 그 손끝에는 수십 년간의 경험과 세심함, 자연에 대한 존중이 서려 있다. 이들이 묘목을 고르는 눈빛은 상인의 그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자식이나 손주를 보내는 부모의 눈빛처럼 따뜻하고 조심스럽다.

묘목 한 그루를 심는다는 것은 단지 땅에 나무를 꽂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땅에 어떤 삶이 뿌리내릴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이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옥천의 할아버지들이며, 그들의 땅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유산으로 남는다.

앞으로 옥천 묘목축제가 더욱 풍성한 콘텐츠로 확장된다면, 이 축제는 단지 농업 산업의 행사를 넘어, 자연과 인간, 노인과 청년,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진정한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역이 가진 자산은 ‘규모’가 아니라 ‘사람’에 있다. 그 사람의 말, 손, 표정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에서, 옥천 묘목축제는 여전히 가장 따뜻하고 가치 있는 축제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