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선 얻고, 마을에선 만든다 – 청년 귀향의 두 가지 삶
-도시에선 많은 것을 얻지만,
마을에선 잊고 있던 것을 ‘만들며’ 살아간다.
1. 도시에서의 삶 – 준비된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도시는 인프라가 완벽하다. 대중교통, 배달 서비스, 병원, 대형 쇼핑센터 모두 손 닿는 곳에 있고, 각 분야 전문가와 문화 환경 또한 넘쳐난다. 청년들은 이 혜택을 누리며 ‘필요한 것을 얻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구조는 이미 완성된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는 삶이기도 하다. 정해진 루트, 조직의 규칙, 업무 성과 지표, 월세·출퇴근 시간에 맞춘 생활 패턴을 주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청년은 곧 시스템 안에 자리 잡은 구성원이 된다. 이 틀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운용하기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특히 많을수록 좋다고 여겨지는 선택지들은 되려 결정 피로를 낳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보다 ‘가장 효율적인 루트’에 자신을 맞추는 삶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불안감 속에서 도시를 떠나고 싶어 그러나 발걸음이 쉽게 나가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안정된 삶을 얻는 대신, 스스로를 발견할 여유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도시의 구조는 마치 거대한 그물망과 같다. 그물망 안에서는 편하고 안전하지만, 술술 풀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매듭에 맞춰 작동해야 한다. 사회적 연결망이 넓지만, 사람 사이에 흐르는 진심은 얕고 넓기만 하며, 어쩌면 가장 큰 모호함이 거기 숨어 있다. 결국 도시는 ‘얻기 쉬운 삶’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큰 공간이기도 하다.
2. 마을에서의 삶 – 스스로 구조를 만드는 방식
마을은 정반대의 공간이다.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상점이 없으며, 병원이나 문화시설도 드물다. 생필품 하나 사기 위해 자동차나 공동 차를 공유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 귀향자들은 이 ‘비어 있음’을 기회로 삼는다. 빈집을 고쳐 카페를 열고, 마을에 없던 공방을 세우며,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스스로 설계하기 위해 시작한다.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이라면 봉사이든 창업이든, 스스로 손을 대고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도시에서 익숙한 ‘노동’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한다. 정해진 근무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가치를 향한 시간이 된다. 이들은 스스로 직업을 만들고, 공간을 기획하며, 주민과의 관계를 구축한다. 물론 실패의 위험도 크다. 손님이 없거나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나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 자산으로 변한다. 경험할수록 견고해지는 삶, 단단한 관계, 자율적으로 설계하는 일상의 구조가 마을에서 구축된다.
마을의 삶은 도시보다 속도가 느리지만, 깊이가 있다. 단순히 바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균열과 성장의 계기가 된다. 누군가는 “나는 이 시골에서 나를 다시 만났다”고 말한다. 그만큼 공간에서 무언가를 채우는 경험은 삶의 무게를 더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 삶의 설계 도자인 존재로 진화한다는 점이, 청년 귀향자들에게 큰 동기이자 에너지다.
3. 관계의 밀도 – 익명성 vs 호명되는 삶
도시에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얕고 넓다. 지나가는 이웃에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고,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스마트폰을 보며 넘어갈 수 있다. 연결은 많지만, 진실한 인정은 적다. 하지만 마을로 옮겨온 이후 청년들은 ‘호명되는 삶’을 경험한다. 작은 상점에서 “어제는 비 많이 왔더라”라는 인사 한마디에 하루 기분이 바뀌기도 하고, 마을 회관을 드나들며 누군가의 이름으로 불리면 타인의 존중을 느끼게 된다.
이런 관계는 처음에는 부담스럽다. 사생활은 덜 투명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차 ‘누군가가 나를 알고, 내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관계의 깊이가 생긴다. 노인, 학생, 이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새 마을 축제 기획에 참여하거나 작은 봉사 활동을 이끌게 된다. “내가 있어야 우리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현실감이 삶의 존재 의미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마을에서의 삶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적 감정이 살아 있다는 표현이다. 누군가 아프면 곧 소문이 나고, 빨리 달려가는 지원이 일상이다. 반대로 도시에서는 아파도 혼자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관계의 밀도는 삶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감정적 자기 보호막이 된다. 사람은 관계로 존재하며, 마을은 그 관계의 무게를 새롭게 깨닫게 만든다.
4. 선택이 만든 두 가지 삶의 질
도시와 마을이 단순히 비교될 수 없는 이유는, 각각이 제공하는 ‘삶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청년 귀향자들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속도와 효율보다 여유와 의미를 원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일정한 수입과 인프라를 포기하지 않더라도, 마을에서는 사람을, 관계를, 공간을, 내가 만들어간다는 주체성이 단단한 선택 동기가 된다.
물론 수입은 적다. 그러나 동시에 지출도 줄어든다. 월세 없는 집, 가까운 지인과의 공동식사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 않지만 더 단단히 쌓인다. 무엇보다 ‘내 삶을 내가 일정 부분 완성했다’는 감각은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 이 감각이야말로 지방소멸이라는 위기를 넘어, 마을을 ‘살기 좋은 공간’으로 전환하는 역동적 에너지다.
청년 귀향은 단순한 인구 전입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의 복귀다. 이들은 마을에 공간을 세우고, 관계를 만들어 사람들을 이어주며, 지역의 리듬을 새롭게 생성해 간다. 지방소멸의 해법은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데 있지 않다.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돌아올 때 마을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곳이 되어 간다. 그렇게 마을은 다시 태어나며, 그 중심에 귀향한 청년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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