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상속이 만든 귀촌, 그 이후의 변화 기록
1. 갑작스러운 상속, “집이 생겼다”는 말의 이면
30대 초반의 김현우 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 돌아가신 외조부가 생전에 소유하고 있던 강원도 평창의 농가주택 한 채가 그의 명의로 넘어왔다는 소식이었다.
생전에 외할머니가 홀로 사시다 빈집이 된 지 10년.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외가’라는 감성이 남아 있을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택은 방치된 지 오래였고, 마당은 잡초로 뒤덮여 있었으며, 지붕은 내려앉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집은 ‘명의상’ 김현우 씨의 자산이 되었고, 그 순간 그는 의도치 않게 ‘시골 집주인’이 되었다.
이처럼 청년층에게 시골 빈집이 상속 형태로 넘어오는 사례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망한 고령자 중 약 40%는 농촌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중 다수가 후계 없이 직계비속에게 자동 상속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상속이 기회가 되기보다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소유권은 생겼지만, 주택의 유지·관리·세금 납부·법적 분쟁에 대한 책임도 함께 생긴다.
특히 해당 건물이 등록되어 있지 않거나, 수십 년 전 방식으로 건축된 경우 위반건축물로 분류될 가능성도 높다.
김현우 씨는 처음엔 "팔아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장에 내놓자 전혀 연락이 없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 집은요, 파는 게 아니라 누가 가져가 주면 감사한 거예요."
그 말이 전부였다.
부동산 가치가 0원에 수렴하는 시골 빈집은 결국 상속자에게 현금이 아니라 과제를 안겨준다.
2. 살기로 결정하면 마주하는 현실들
김현우 씨는 결국 집을 손보며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상속세는 주택 공시가가 낮아 면제되었고, 지방자치단체의 ‘빈집 재생 지원 사업’을 통해 일부 수리비 보조도 가능했다.
그는 처음으로 페인트 붓을 잡고, 수도를 연결하고, 인터넷 기사와 전기를 확인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도시에서의 월세 계약만 반복했던 청년에게, 이 모든 과정은 생애 최초의 정착 경험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선 현실적 문제는 생각보다 많았다.
도로명 주소가 등록되지 않아 온라인 쇼핑이 제한됐고, 건물 등기부에 과거 토지분쟁 흔적이 남아 있어 변호사 상담까지 받아야 했다.
하수관이 연결되지 않아 오수를 직접 처리해야 했으며,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어 석면 해체 인가 절차도 거쳤다.
정부는 ‘빈집 활용 활성화’를 외치지만, 상속 빈집은 ‘법적 명확성’이 떨어지고, 행정절차가 복잡해 초기 진입장벽이 높다.
현실적으로 상속받은 청년이 이 모든 행정적 절차를 독자적으로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김현우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역 건축사에게 자문하고, 주민센터를 수십 번 오가며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그는 “인제야 집이 내 것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선택은 단지 빈집 재생이 아닌, 지역과의 관계 맺기였다.
물리적인 수리는 결국 행정 절차와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 없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3. 새로운 거주, 의외의 경제적 전환점이 되다
김현우 씨는 도시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코로나19를 계기로 완전한 원격 근무 체계로 전환됐다.
그는 이 빈집을 ‘스튜디오 겸 거주 공간’으로 바꾸었다.
월세가 사라지고, 생활비는 도시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이었다.
도시에서는 하루 대부분을 출퇴근과 소비에 썼지만, 시골에서는 작업 시간 외에는 마을을 돌보거나 책을 읽고, 요리한다.
또 하나의 변화는 ‘수익구조’다.
그는 집의 한편을 작은 접견실로 꾸며
‘로컬 감성 스테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소개했다.
생각보다 반응은 좋았다.
한 달에 평균 8~10회 예약이 들어오고, 숙박 외에도 브랜딩 컨설팅과 디자인 워크숍을 함께 진행하면서 수익이 다변화되기 위해 시작했다.
시골 빈집이 단순한 자산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수익화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공간 자체를 콘텐츠화하며 ‘집을 수익화하는 방식’을 바꾼 사례가 되었다.
도시에서 월 80만 원 내던 원룸을 떠나, 지금은 매월 50만~70만 원의 수익을 공간에서 발생시킨다.
그는 말한다.
“상속은 처음엔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형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선택이 단지 비용 절감이 아닌
삶의 가치 전환이었다는 점이다.
4. 한 사람의 정착이 지역을 흔들기 위해 시작한다
김현우 씨의 변화는 집 안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가 마을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김장하고, 눈이 오면 제설 작업을 돕는 등 생활 속 교류가 늘자
이웃 어르신들이 먼저 반찬을 나누고 조언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지자체는 그의 집을 ‘귀촌 정착 사례지’로 지정해 외부 프로그램을 유치하기 위해 시작했다.
도시 청년들에게 시골 정착 경험을 소개하는 파일럿 워크숍이 그의 집에서 열렸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청년이 마을에 관심을 보였다.
이 중 한 명은 실제로 인근에 방치된 빈집을 매입해 공방 겸 스튜디오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명의 청년, 한 채의 빈집이 끌어낸 변화는 작지만 명확하다.
귀촌은 여전히 두려운 선택이지만, 이미 시도한 누군가의 경험이 다음 사람의 진입 장벽을 낮춘다.
무엇보다, “여기도 누가 산다”는 단 한 줄의 사실이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시작점이 된다.
그는 지금도 말한다.
“집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집에서 사는 선택을 하면, 삶이 방향을 바꿀 수는 있죠.”
그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마당의 나무를 가꾸고, 마을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고,
빈집 리모델링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건넨다.
그가 받은 빈집은 더 이상 ‘죽은 자산’이 아니다.
그 집은 현재진행형의 삶이자, 다음 세대를 향한 씨앗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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