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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지역탐구

빈집을 콘텐츠로 만든 청년의 브랜딩 전략

by around-the-worlds 2025. 6. 20.

– 집을 고친 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1. 낡은 집, 버릴 것이 아닌 스토리의 원형

 

경북의 한 폐가.
70년 전 지어진 이 작은 집은 십 년 넘게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벽지는 다 뜯겼고, 마당은 들풀이 가득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콘텐츠 감독으로 일하던 30대 중반의 청년 박윤호 씨는 이 집을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가 눌러앉은 장소입니다.”

그는 상속받은 빈집을 철저하게 **‘스토리 기반 콘텐츠 자산’**이로 보았다.
즉, 공간 그 자체보다는 공간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정서적 서사에 주목했다.
수리를 시작할 때도 단순히 고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창문은 그대로 살리고, 부식된 나무 기둥은 보강하되 외형은 유지했으며,
도배는 하지 않고 흙벽 그대로 노출했다.

그는 이 과정을 SNS에 올렸다.
“할아버지가 쓰던 책상이 남아 있습니다.”
“2층 다락에서 1984년도 만화책이 발견됐어요.”
팔로워 수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빈집의 변화보다, 그 안에서 태어나는 ‘기억의 조각들’에 반응했다.

박 씨는 이렇게 말한다.
“브랜딩은 외형이 아니라 분위기를 구축하는 겁니다.
빈집을 고치면 공간이 되지만, 맥락을 담으면 콘텐츠가 됩니다.”

 

2. 브랜딩의 본질은 ‘컨셉 명확화’에 있다

 

박윤호 씨는 자기 집에 이름을 붙였다.
“시간의 집 – House of Silence.”
이름부터 브랜드였다.
단순한 민박이 아니라, ‘조용한 기억의 장소’라는 개념을 시각화한 것이다.

그는 이 공간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면서도 일반 숙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디지털 디톡스 숙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혼자 묵는 1인 한정 숙소’라는 컨셉을 명확히 했고,
모든 홍보물에서 이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방 내부에는 시계도, TV도 없었다.
휴대전화 충전기는 있되 와이파이는 없었고, 침구류는 의도적으로 옛 스타일로 맞췄다.
방문자에게는 손으로 쓴 웰컴 노트가 제공되었고,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한 대을 빌려주며 마을 산책 사진을 찍어보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단순 숙박 목적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소비하러 오는 고객이 생겼다.
직장인 여성, 에세이 작가, 힐링 여행객, 요가 강사 등
단기 체류 후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자연스럽게 콘텐츠 파급 효과가 발생했다.

그는 말한다.
“브랜드는 말이 아니라 방향성입니다.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가 브랜딩의 성공 여부를 결정합니다.”

 

3. 빈집을 수익 아닌 생태계로 전환하다

 

‘시간의 집’은 오픈 1년 만에 월 15박 이상 예약이 꾸준히 유지되었고,
주말은 3개월 치까지 선 예약이 들어오는 인기 공간이 되었다.
그의 수익 모델은 단순한 숙박료뿐만이 아니었다.
박 씨는 콘텐츠 기반의 부가 수익 생태계를 설계했다.

먼저 그는 숙소 체험객을 대상으로
‘1박 2일 글쓰기 워크숍’을 기획했다.
마을의 사연, 자기 성찰, 디지털 디톡스 경험을 연결한 글을
참가자들이 작성하도록 한 뒤, 소책자로 발행했다.
이 책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판매되었고,
‘조용한 콘텐츠의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서울 전시 공간에도 진출했다.

또한 그는 지역 주민들과 협업해
할머니의 수세미 공예, 제철 채소 요리 레시피, 민속놀이 체험을
패키지화해 '로컬 프로그램'으로 연결했다.
외지인이 잠만 자고 떠나는 공간이 아닌,
마을과 상생하는 체류형 콘텐츠 플랫폼이 된 것이다.

게다가 공간의 운영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었다.
유튜브에 올린 ‘빈집 브랜딩 브이로그’는
평균 조회수 3만 회를 기록하며,
젊은 귀촌 예비자들 사이에서 모범 사례로 언급되기 위해 시작했다.

박 씨는 말한다.
“빈집은 매물로 두면 끝나지만, 플랫폼으로 쓰면 시작입니다.
혼자 쓰는 집이 아니라,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낡은 집, 버릴 것이 아닌 스토리의 원형



 

4. 브랜딩이 곧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시간의 집’이 알려지자
인근 마을에서도 박 씨에게 문의가 들어왔다.
“우리 마을에도 남는 집이 있는데, 운영해 볼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그는 실제로 2개의 빈집을 추가로 리모델링했고,
각각 ‘조용한 부엌’, ‘고요한 서재’라는 이름으로 시리즈와 했다.

지자체는 그의 사례를 보고
귀촌 유입을 위한 콘텐츠 브랜딩 컨설팅을 의뢰했고,
박 씨는 ‘시골 빈집 활용 컨설턴트’로 불리기 위해 시작했다.
이제 그는 운영자이자 기획자이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설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브랜딩이 단순히 개인의 마케팅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지역과 콘텐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그는 말한다.
“빈집을 고쳐봤자, 사람이 안 오면 끝입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만들어지면, 그 집은 ‘누군가 찾아오는 목적지’가 됩니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지방소멸 시대에 마을을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문장이다.
지금 수천 채의 빈집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한 사람의 브랜딩으로 다시 깨어나는 집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