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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지역탐구

출산율 0명,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들

by around-the-worlds 2025. 5. 21.

1.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

강원도의 한 작은 산촌에는 예전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는 풍경이 익숙했다. 겨울이면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눈밭을 누볐고, 봄이면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고요함만이 흐른다. 학교는 이미 폐교됐고, 놀이터는 녹슬어 있다. 2023년 기준 70세 미만의 주민이 단 한 명도 없다. 아이 울음소리는 15년째 들리지 않고 있으며, 최근 5년간 출생신고도 없었다.

이러한 마을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통계청과 각 지자체 발표에 따르면 전국 3천여 개 읍·면 단위 중 일부 지역은 5년 연속 출생아 수 0명을 기록 중이다. 일부 지역은 아예 10년 이상 출산이 없는 상태이며, 일부 군 단위는 지역 내 산부인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인구 문제를 넘어서, 그 마을이 더 이상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우리 마을은 장례식만 열려요.” 생일 잔치는 사라졌고, 입학식은 멈췄으며, 동네잔치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마을에서 아이가 사라지자 그 아이를 둘러싸고 형성되던 모든 구조와 관계, 감정들이 함께 소멸하였다. 텅 빈 집 마당엔 고양이만 드나들고, 예전에 아이들이 그려놓은 분필 낙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은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

 

2. 출산이 멈춘 마을, 구조가 무너진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아이를 중심으로 작동하던 마을의 구조 전체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교육기관이다. 초등학교는 신입생이 없다는 이유로 폐교되고, 통합학교로 편입되거나 인근 도시로 전학이 이뤄진다. 학교가 사라지면 유치원, 어린이집도 함께 문을 닫는다. 보육시설이 없는 마을에는 젊은 부부가 들어올 수 없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교육받을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구조 붕괴는 생활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학원이 사라지고, 서점이 문을 닫고,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중단되며, 장난감 가게가 줄어든다. 마을 안에선 아이를 위한 소비가 완전히 사라지며, 소상공인들도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가게를 철수하게 된다. 출산이 멈췄다는 건 단지 사람이 줄어든 게 아니라, 소비가 멈추고, 교육이 멈추고, 미래가 멈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결국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진다. 아이의 존재는 단지 한 가족의 사생활이 아니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아이가 이웃의 손주이자, 함께 자랄 대상이자, 대화의 중심이었다. 입학식을 구실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운동회는 지역 잔치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회가 없다. 아이가 사라지면서 이웃 간의 관계도 끊기고, 마을은 ‘함께 사는 곳’이 아닌 ‘각자 살아가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3. 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가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농촌과 지방 마을에서의 ‘출산율 0명’은 단지 저출산의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구조적 문제이며, 지역 간 불균형의 상징이다. 청년층이 지방을 떠나는 것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문화, 의료, 교육, 교통 등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생활 인프라 속에서, 청년은 살아남기 어렵다.

귀향이나 귀촌을 결심한 청년들조차 마을에 실제로 정착하는 데는 많은 장벽이 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다. 빈집은 많지만 어렵고, 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행정은 협조적이지 않고, 마을 내부의 문화는 폐쇄적이다. 아이를 키우려는 부부가 선택하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게다가 의료기관은 멀고, 인터넷은 느리며, 놀이터 하나 없는 마을은 도시에서 살던 사람에게 ‘정서적 공백’을 안겨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청년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로 결심하기란 쉽지 않다. 도시에서는 공공보육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마을에서는 그것이 부모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하고,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도 늦어진다. 자연스럽게 청년 가정은 마을을 떠나거나 아예 돌아오지 않는다. 출산이 없는 것은 정책의 실패이자, 구조의 실패다. 그리고 그 실패는 점점 더 많은 마을을 사라지게 만든다.

 

4. 다시 아이가 태어나는 마을을 만들려면

이제는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일회성 정책이 아닌, 구조 전반을 되짚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마을이란, 곧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 마을에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육아와 교육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어야 한다. 또한 경제활동이 가능하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즉, 정주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 번째는 주거의 문제다. 지방에는 수많은 빈집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청년 가정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은 매우 부족하다. 장기 임대, 리모델링 지원, 공공 매입 등 적극적인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돌봄이다. 공동 육아, 마을 보육 시스템, 협동조합식 어린이집 등 지역 단위의 아이 돌봄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세 번째는 경제다. 귀촌 가정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원격근무 기반 마련, 로컬 창업지원, 직업교육 등도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다. 마을이 단순히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람을 연결하고 지탱하는 문화가 살아 있어야 한다. 이웃과 인사하고, 아이를 함께 키우고, 서로의 삶을 지켜봐 주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그 마을은 다시 아이 울음이 들리는 마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마을을 보고 싶은 것이다. 출산율은 숫자가 아니라, 마을이 얼마나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금, 그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한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