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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지역탐구

출산율 0명, 그 후… 마을 버스도 사라졌다

by around-the-worlds 2025. 5. 22.

출산율 0명, 그 후… 마을 버스도 사라졌다

– 인구 소멸이 만든 교통 공백의 현실


1. 아이가 사라진 마을, 정적만이 남다

언제부터인가 마을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예전엔 누군가 출산을 하면 동네가 들썩였고, 이장님은 마을회관 마이크로 아기의 탄생을 알렸다. “오늘 ○○이 네 집에 딸이 태어났습니다. 다들 축하해 주세요.” 아이의 울음은 마을 전체의 활력이었고, 이웃들은 돌아가며 미역국을 끓이고 아기 이불을 손수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출산율 0명이라는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 마을의 지난 10년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상징이 되었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단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고, 이후 출생신고는 멈췄다. 이웃 마을 초등학교는 입학생이 없어 5년 전 폐교되었고, 함께 폐쇄된 병설 유치원 자리엔 이제 잡초만 무성하다.

출산이 끊기자 조금씩 조용해졌고, 조용함은 곧 정적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없는 마을에선 아침에 들리는 소리부터 달라진다. 등굣길 아이들의 발소리, 엄마의 잔소리, 버스가 정차하는 엔진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삶의 리듬이 사라졌고, 그로 인해 마을은 시간의 흐름마저 멈춘 듯하다. 몇몇 어르신들은 “이러다 우리도 잊히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 실제로 마을엔 이주해 온 청년도 없고, 자녀를 둔 가정도 없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떠났고, 이 마을로 돌아오려는 사람은 없다. 출산율 0명은 단지 아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마을의 ‘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마을버스는 왜 끊겼는가

그날도 언제나처럼 오전 7시 15분, 마을버스가 버스정류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 타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 기사는 말했다. “요즘엔 한두 명밖에 안 타요. 그것도 병원 가는 할머니뿐이에요.” 그런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자, 결국 버스는 노선을 줄였고, 주 3회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버스는 완전히 끊겼다. 그 자리에 붙은 공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노선은 승객 수 감소로 인해 2024년 4월 1일부터 운행을 종료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 처음 실감했다. 아, 이 마을은 정말 ‘버려지는’ 중이구나.

마을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어르신에게는 생명선이고, 시장을 보러 나가는 유일한 발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가서 손주를 만나거나, 약을 타오거나, 공과금을 내고 돌아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버스가 사라진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없는 마을은 ‘등하교’라는 정기적 수요가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고, 학생 한 명이 없으니, 지자체도 해당 지역에 교통 예산을 배정할 이유가 없다. 출산율 0명이 몇 년만 이어지면 결국 학교가 폐교되고, 그로부터 멀지 않아 버스가 끊긴다.

마을버스가 끊긴 이후, 주민들은 서로 돌아가며 차를 태워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고령자가 많은 마을에서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병원 예약에 맞춰 차를 섭외하고, 눈이 오면 읍내에 나갈 수 없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주민들은 ‘나가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동권이 차단된 삶은 사실상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버스가 끊긴 마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외부와 연결되지 않게 되었고, 그 단절은 마을을 안으로만 침몰하게 만들고 있다.

 
 

3. 아이 없는 마을에서 무너지는 일상의 조건들

출산율 0명은 마을의 모든 시스템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아이가 없다는 것은 단지 한 명의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어린이집이 운영될 수 없다는 뜻이고, 유치원 교사가 필요 없다는 뜻이며, 초등학교의 유지 비용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공공 시스템 전체의 철수로 이어진다. 보건소 분소는 폐쇄되고, 보건 간호사 파견은 중단된다. 아기용품을 팔던 작은 슈퍼는 장사가 안돼 문을 닫고, 예방접종 일정은 읍내로 통합된다. 마을 단위에서는 아이를 중심으로 구성됐던 수많은 일상과 서비스가 순차적으로 해체된다.

놀이터는 녹슬고, 유모차를 끄는 풍경은 사라졌으며, 마을회관엔 더 이상 동화책도 없다. 아기의 울음소리 대신 들리는 건 빈집 대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뿐이다. 아이가 없는 마을에는 이야기가 없다. 이름을 지어줄 일도, 사진을 찍을 일도, 아이의 성장을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감정도 없다. 출산율 0명은 곧 관계의 단절이며, 마을 공동체의 감정선이 끊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머니들은 과거 손주들을 안아보며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곤 한다. “아가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 냄새가 그립다니까.” 하지만 그 감정을 다시 꺼낼 기회는 이제 없다.

이러한 감정적 단절은 결국 마을 주민들 스스로 ‘떠나야 하나’라는 고민을 안기게 된다. 병원이 멀어지고, 버스가 끊기고,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고, 빈집만 늘어날 때 주민들은 스스로 묻는다. “나는 왜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가?” 그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 ‘공공 서비스’인데,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남아 있는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하나둘 또 떠나고, 마을은 완전히 끊긴다. 버스는 사라졌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의지도 사라진다.


버스가 다시 오게 하려면, 아이가 먼저 와야 한다

4. 버스가 다시 오게 하려면, 아이가 먼저 와야 한다

마을에서 버스가 사라졌다는 건 단순한 교통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본선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마을은 버스를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있어야 버스는 온다. 즉, 사람, 그중에서도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구조가 없는 마을에는 어떤 시스템도 유지되지 않는다. 출산율 0명은 단지 인구 감소가 아니라, 마을의 기능이 하나씩 사라지는 과정 그 자체다. 병원은 버스를 보고 오고, 학교는 아이를 보고 남고, 행정은 거주율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야 버스가 오고, 버스가 와야 사람들이 다시 머문다.

하지만 아이가 다시 태어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수많은 지방 마을은 아이가 없어 폐교되고 있으며, 더 이상 출산을 할 수 없는 연령대의 고령자만 남아 있다. 그래서 마을은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답은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일, 정확히 말하면 젊은 가족이 이주해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장기 임대형 빈집 제공, 출산 가정에 대한 특별 지원금, 교통비와 육아비 보조, 교육 기반 유지를 위한 최소수요 보장제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원금’이 아니라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가정이 마을에 와서 정착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단순히 집 한 채가 아닌 살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일할 곳,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설, 병원과의 접근성, 다른 또래 가정과의 유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마을에 정착해도 소외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귀촌을 결심한 한 30대 여성은 말했다. “아이 낳고 내려가면 도시보다 안전하고 좋겠지 싶었어요. 근데 어린이집이 없다는 말에 결국 돌아섰죠.” 구조가 없으면 선택도 없다. 선택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하지만 변화는 가능하다. 실제로 경북의 한 마을에서는 귀촌한 젊은 부부가 폐가를 개조해 작은 카페를 열었고, 그 부부가 아이를 낳은 이후 인근 마을 두 곳에서 추가로 청년 가정이 이주했다. 그 마을에선 다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고, 교육청은 폐교 대상이던 분교를 조건부 유지로 전환했다. 그리고 3년 후, 주 2회였던 마을버스가 다시 매일 운행되기 위해 시작했다. 아주 작지만, 분명한 회복의 흐름이다. 다시 말해, 마을을 살리기 위한 첫걸음은 아주 작고 조용한 소리, 아기 울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출산율을 숫자로만 보았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엔 학교가 있고, 병원이 있고, 마을버스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마을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사라지고, 학교가 사라지고, 버스가 끊기고, 편의점이 문을 닫고, 사람이 떠나는 그 흐름 속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하지만 거꾸로 다시 아이가 태어나고, 이웃이 인사하고,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면 그 마을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버스를 다시 오게 하려면, 아이가 먼저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