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마을의 유일한 생일잔치: 90세 노인의 날
– 고요한 산촌을 밝힌 단 하루의 웃음소리
1. “올해 생일은 하나뿐이래요”
해마다 봄이 오면 이 마을엔 생일 잔치가 많았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이웃들이 음식을 나르며 정을 나누던 날들.
그러나 이제 그런 날은 더 이상 없다.
2024년, 이 마을에서 예정된 생일 잔치는 단 하나다.
주인공은 이춘자 할머니. 올해 아흔을 맞는다.
전남의 산촌, 주민등록상 거주 인구는 31명.
그중 70세 미만은 단 세 사람뿐이다.
아이 울음은 끊긴 지 14년,
초등학교는 10년 전 폐교됐고,
새로 유입된 가정은 지난 5년간 ‘0’이다.
"올해 생일 잔치 예정된 사람은 이춘자 어르신뿐입니다."
이장님의 말은 통계처럼 들렸다.
그러면서도 씁쓸했다.
예전 같으면 마을 한 해 일정이
아이 생일, 백일, 회갑, 칠순으로 빼곡했지만
지금은 생일이 곧 ‘행사’가 된 것이다.
마을회관 앞엔 작은 현수막이 걸렸다.
“이춘자 어르신 90세 생신을 마을이 축하합니다.”
지자체 예산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것이다.
누군가 말한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누군가는 기억해 줘야 하잖아요.”
그 잔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생일상 하나로 움직이는 마을
잔치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됐다.
손이 느린 어르신들은 매일 조금씩 음식을 만들었다.
고사리와 도라지, 표고를 손질하고,
읍내에서 공수해 온 잡채, 족발, 김치전이 회관 부엌에 쌓였다.
생일상 가운데는 작은 케이크가 올랐다.
숫자 9와 0이 꽂힌 그 케이크를 위해
이장은 읍내 제과점을 두 군데나 돌았다.
"케이크가 뭐라고…" 하면서도
마을 모두가 그 ‘하얀 생크림의 상징성’을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아직 우리가 축하할 수 있는 이유가 남아 있다는 것”**의 상징이었다.
잔칫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씩 천천히 회관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지팡이를 짚고,
누군가는 손에 설탕 봉지를 들고 왔다.
90세 생일상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누구도 그것을 단지 ‘축하’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거 아마 올해 우리가 모일 마지막 자리일 거야."
누군가 조용히 중얼거렸고
다른 이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잔치는 일상이 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비일상이 되어버렸다.
사진사가 없어도 모두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한 장이라도 더 찍어 남겨 두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 사진에 이렇게 썼다.
“2024년 마을에서 있었던 단 하나의 생일”
이것은 기념이자 기록이자,
한 공동체가 마지막으로 낼 수 있는 웃음이었다.
3. 마을에 생일이 없다는 것은
생일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인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곧 관계가 끊기고, 기억이 희미해지고,
이웃 간에 정을 나눌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마을에서 생일이란,
가장 작은 단위의 ‘축제’이자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을 수 있는 명분이었다.
누군가의 돌잔치엔 모든 어르신이 초대되고,
회갑 잔치 땐 잔칫집 마당에서 막걸리가 돌았다.
하지만 지금, 마을엔 그런 장면이 없다.
대문은 닫혀 있고,
마당은 텅 비었고,
잔칫날을 알리는 확성기 방송도 사라졌다.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만 있는 마을’을 말하지 않는다.
그건 곧 ‘기억할 일이 줄어든 마을’을 의미한다.
아이의 생일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어른의 생일은 살아온 것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것이 모두 사라진 곳에서는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조차 무뎌진다.
한 어르신은 말했다.
"올해 내 생일도 있었겠지… 근데 아무도 몰랐어요."
그 말은 슬픔이라기보다
‘기록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고백처럼 들렸다.
이 마을에선 이제 생일조차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그 무게가 곧
마을이 사라지는 방식이다.
4. 아이는 없지만, 우리가 서로를 기억한다면
출산율 0명, 유소년 인구 0명, 학교는 폐교되고 병원 분소는 철수됐다.
마을버스는 2년 전부터 끊겼고,
택배차는 주 1회 들어오는 것이 전부다.
이 마을엔 더 이상 ‘살이에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행정 구역상 살아 있지만,
생활 단위로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공간.
뉴스에서는 ‘소멸 위기 지역’이라 부르지만,
이곳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런 단어가 더 모욕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런 마을에서 90세 노인의 생일 잔치가 열렸다는 사실 하나는
아직 이곳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살아 있고,
그 사람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 이웃이 있으며,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자리를 마련하고 노래를 부르는 공동체가 존재한다.
그 공동체는 크지 않지만,
관계의 밀도만큼은 여느 도시보다 훨씬 단단하다.
생일상이 끝나고 회관 천막이 걷힌 후에도
잔치에 대한 이야기는 며칠간 이어진다.
“케이크가 예뻤다”,
“할머니 얼굴이 참 환했지”,
“우리도 내년에 또 할 수 있을까?”
이 소소한 대화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 집단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마을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출산율’이나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마을의 생존 여부를 판단하지만,
정작 마을을 진짜로 지탱하는 것은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을 의미 있게 되새기는 일,
그것이 곧 공동체의 작동 방식이자
소멸을 막아내는 마지막 조건이다.
이 마을에 아이는 없다.
하지만 아이가 없다는 것이
반드시 희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마을은 여전히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언젠가
한 명의 아이가 이 마을에서 태어난다면—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퍼져 나간다면—
오늘의 생일 잔치는 단지 노인의 생일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날,
90세 생일상을 함께 준비했던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린 기다렸어. 이 마을이 다시 웃는걸.”
바로 그 순간,
이 마을은 더 이상 잊힌 마을이 아니라
기억이 전해진 마을,
다시 이어진 마을이 된다.
사람이 사는 곳엔 이름이 있고,
이름이 남는 곳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마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 하나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이유,
그건 바로 오늘의 생일 잔치처럼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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