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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지역탐구

‘젊은이 환영’ 현수막 걸린 출산율 0마을 방문기

by around-the-worlds 2025. 5. 24.

‘젊은이 환영’ 현수막 걸린 출산율 0마을 방문기

– 간절한 기대와 조용한 현실 사이에서


1. 출산율 0마을, 입구에 걸린 낯선 현수막

전라북도의 한 산골 마을.
오래된 국도를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커브를 지나 작은 들판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마을의 존재를 처음 알린 건
입구에 걸린 한 줄의 문장이었다.

“젊은이 환영합니다! 귀촌·귀농 대환영!”

현수막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지만,
글씨는 희미하게 바래 있었다.
이미 여러 계절을 견딘 듯 비닐 가장자리는 닳아 있었고,
철사로 묶인 줄은 녹이 슬어 있었다.
그 앞에서 차를 세우고 마을 안을 둘러보았지만,
젊은이의 기척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인구는 120명.
이장에 따르면, 이 중 70대 이상 인구가 80%에 이른다고 했다.
최근 10년 동안 출생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유모차가 들어온 건 2006년이었어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조용히 말했다.

현수막은 확실히 ‘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정서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그 말은 단지 외지인을 향한 환영이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아무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을의 위기 인식이 글자로 형상화된 구조 신호였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말 없는 침묵의 외침’으로 느껴지는 풍경은
정작 그 단어를 가장 절실히 받아들이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현수막 하나가 품은 뜻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인적 드문 시골길


2. 환영은 있지만 준비는 없는 마을


“현수막을 보면 젊은이들이 찾아올 줄 알았어요.
우린 그저 사람이 필요했어요.”
이장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 마을을 찾았던 청년들 대부분은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갔다.

주요 이유는 단순했다.
주거 문제, 의료 접근성의 한계, 자녀 교육 환경의 부재.
어느 하나라도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지만,
이 마을은 세 가지가 모두 결여되어 있었다.
결국 청년들이 “환영합니다”라는 말에 이끌려 들어왔지만,
막상 살아보니 버틸 수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를 가진 청년 부부에게는
‘육아 환경’이 절대적인 정착 조건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보육시설은 물론,
놀이터조차 없었다.
예방접종은 읍내 보건소로 나가야 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부모 중 한 명은 필연적으로 일을 포기해야 한다.

이장이 말하길, “청년이 오면 마을이 살아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외로워졌어요.”
그 말은 곧, 이방인을 환대하는 마음만으로는
공동체가 확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환영은 마음의 표현이지만,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건 구조다.

마을이 ‘살고 싶어지는 곳’이 되려면
최소한의 주거, 보육, 일자리, 교통 인프라가 필요하다.
청년층은 더 이상 ‘자연이 아름답고 공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정착을 결정하지 않는다.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환대도 결국 이방인의 짐이 될 뿐이다.


3. 정주 조건 없는 ‘희망 메시지’의 공허함

이 마을도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지자체와 함께 청년 유입을 위한 공모 사업에 여러 차례 지원했고,
빈집 리모델링, 귀촌 창업 교육, 농업 창업 예산 확보 등
적극적인 시도가 있었다.

문제는 실행 이후였다.
리모델링된 주택은 계약 절차와 소유권 문제로 장기간 공실 상태였고,
청년들이 머무르기엔 인터넷 속도가 현저히 느렸으며,
하루 두 번 운행하는 마을버스 외에는 교통수단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정착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좋아 보였어요. 조용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근데 아이가 아플 때 병원 가는 데만 반나절 걸리더라고요.
인터넷도 안 터져서 재택근무도 못 하고… 결국 떠났어요.”

결과적으로,
‘젊은이 환영’이라는 메시지는
현실과 괴리된 하나의 상징으로만 작동했다.
마을에 들어온 청년은 연간 1~2명 수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6개월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문제는 단지 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마을 자체가 더 이상 청년 세대를 품을 수 있는 구조를
내부적으로 상실해버린 상태라는 점이 더 본질적이다.


4. 메시지보다 필요한 것: 지속 가능한 삶의 설계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입구의 현수막을 보았다.
“젊은이 환영합니다.”
이 문구는 이제 조금 다르게 읽혔다.
환대의 말이 아니라, 구조의 결핍을 드러내는 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경험한 것은
단지 시골 마을의 외로움이 아니었다.
출산율 0%가 단지 통계가 아니라 구조의 파괴를 뜻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수 없는 조건,
낳더라도 키울 수 없는 구조,
그런 현실이 하나의 마을을 서서히 소멸시키고 있었다.

진정한 해결은
표면적 ‘청년 유입’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설계를 다시 짜야 한다.
교육, 의료, 보육, 주거, 교통, 문화, 일자리…
이 모든 것을 연결한 생태계가 없다면
젊은이는 절대 남지 않는다.
마음만으로는 삶을 유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 환영’이라는 슬로건이
실제로 삶을 초대하려면
그 문장이 정책, 제도, 문화, 커뮤니티로 확장되어야 한다.
단지 문구를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마을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럴 때,
이 현수막이 언젠가
이렇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주, 마을에 돌잔치가 열립니다.
마을회관에서 모두 함께 축하해 주세요.”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이 마을은 더 이상 사라지는 마을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