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환영’ 현수막 걸린 출산율 0마을 방문기
– 간절한 기대와 조용한 현실 사이에서
1. 출산율 0마을, 입구에 걸린 낯선 현수막
전라북도의 한 산골 마을.
오래된 국도를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커브를 지나 작은 들판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마을의 존재를 처음 알린 건
입구에 걸린 한 줄의 문장이었다.
“젊은이 환영합니다! 귀촌·귀농 대환영!”
현수막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지만,
글씨는 희미하게 바래 있었다.
이미 여러 계절을 견딘 듯 비닐 가장자리는 닳아 있었고,
철사로 묶인 줄은 녹이 슬어 있었다.
그 앞에서 차를 세우고 마을 안을 둘러보았지만,
젊은이의 기척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인구는 120명.
이장에 따르면, 이 중 70대 이상 인구가 80%에 이른다고 했다.
최근 10년 동안 출생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유모차가 들어온 건 2006년이었어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조용히 말했다.
현수막은 확실히 ‘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정서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그 말은 단지 외지인을 향한 환영이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아무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을의 위기 인식이 글자로 형상화된 구조 신호였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말 없는 침묵의 외침’으로 느껴지는 풍경은
정작 그 단어를 가장 절실히 받아들이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현수막 하나가 품은 뜻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2. 환영은 있지만 준비는 없는 마을
“현수막을 보면 젊은이들이 찾아올 줄 알았어요.
우린 그저 사람이 필요했어요.”
이장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 마을을 찾았던 청년들 대부분은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갔다.
주요 이유는 단순했다.
주거 문제, 의료 접근성의 한계, 자녀 교육 환경의 부재.
어느 하나라도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지만,
이 마을은 세 가지가 모두 결여되어 있었다.
결국 청년들이 “환영합니다”라는 말에 이끌려 들어왔지만,
막상 살아보니 버틸 수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를 가진 청년 부부에게는
‘육아 환경’이 절대적인 정착 조건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보육시설은 물론,
놀이터조차 없었다.
예방접종은 읍내 보건소로 나가야 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부모 중 한 명은 필연적으로 일을 포기해야 한다.
이장이 말하길, “청년이 오면 마을이 살아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외로워졌어요.”
그 말은 곧, 이방인을 환대하는 마음만으로는
공동체가 확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환영은 마음의 표현이지만,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건 구조다.
마을이 ‘살고 싶어지는 곳’이 되려면
최소한의 주거, 보육, 일자리, 교통 인프라가 필요하다.
청년층은 더 이상 ‘자연이 아름답고 공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정착을 결정하지 않는다.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환대도 결국 이방인의 짐이 될 뿐이다.
3. 정주 조건 없는 ‘희망 메시지’의 공허함
이 마을도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지자체와 함께 청년 유입을 위한 공모 사업에 여러 차례 지원했고,
빈집 리모델링, 귀촌 창업 교육, 농업 창업 예산 확보 등
적극적인 시도가 있었다.
문제는 실행 이후였다.
리모델링된 주택은 계약 절차와 소유권 문제로 장기간 공실 상태였고,
청년들이 머무르기엔 인터넷 속도가 현저히 느렸으며,
하루 두 번 운행하는 마을버스 외에는 교통수단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정착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좋아 보였어요. 조용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근데 아이가 아플 때 병원 가는 데만 반나절 걸리더라고요.
인터넷도 안 터져서 재택근무도 못 하고… 결국 떠났어요.”
결과적으로,
‘젊은이 환영’이라는 메시지는
현실과 괴리된 하나의 상징으로만 작동했다.
마을에 들어온 청년은 연간 1~2명 수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6개월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문제는 단지 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마을 자체가 더 이상 청년 세대를 품을 수 있는 구조를
내부적으로 상실해버린 상태라는 점이 더 본질적이다.
4. 메시지보다 필요한 것: 지속 가능한 삶의 설계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입구의 현수막을 보았다.
“젊은이 환영합니다.”
이 문구는 이제 조금 다르게 읽혔다.
환대의 말이 아니라, 구조의 결핍을 드러내는 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경험한 것은
단지 시골 마을의 외로움이 아니었다.
출산율 0%가 단지 통계가 아니라 구조의 파괴를 뜻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수 없는 조건,
낳더라도 키울 수 없는 구조,
그런 현실이 하나의 마을을 서서히 소멸시키고 있었다.
진정한 해결은
표면적 ‘청년 유입’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설계를 다시 짜야 한다.
교육, 의료, 보육, 주거, 교통, 문화, 일자리…
이 모든 것을 연결한 생태계가 없다면
젊은이는 절대 남지 않는다.
마음만으로는 삶을 유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 환영’이라는 슬로건이
실제로 삶을 초대하려면
그 문장이 정책, 제도, 문화, 커뮤니티로 확장되어야 한다.
단지 문구를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마을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럴 때,
이 현수막이 언젠가
이렇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주, 마을에 돌잔치가 열립니다.
마을회관에서 모두 함께 축하해 주세요.”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이 마을은 더 이상 사라지는 마을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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