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없는 마을의 유일한 택배 기사 이야기
– 고요한 골짜기를 오가는 그 남자의 하루
1. “그 마을은 이제 내가 이름을 다 외워요.”
전북의 한 외딴 마을.
1주일에 한 번, 월요일 아침이면 택배차가 마을 입구에 들어선다.
도로는 포장이 벗겨져 군데군데 흙먼지가 날리고,
마을 어귀에는 “인구 43명”이라는 팻말이 낡은 철제 기둥에 걸려 있다.
이 마을의 유일한 택배 기사는 올해로 17년째 이 지역을 돌고 있는 박종길(가명) 씨다.
대형 택배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이 마을 한 곳만큼은 ‘개인 구역’처럼 다룬다.
그는 말한다.
“여긴 이제 배송지가 아니라, 얼굴을 보러 오는 곳이죠.”
이 마을엔 어린아이가 없다.
출산율은 0명, 최근 9년간 출생신고가 없었다.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8년이 지났고,
아이 울음은 이젠 텔레비전에서만 들린다.
박 씨는 처음엔 이 마을이 그렇게 ‘고요한 곳’일 줄 몰랐다고 말한다.
“아무도 반기지 않아서 놀랐어요. 근데 반긴다는 건 애가 있다는 뜻이거든요.
아기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그런 소리가 없다는 건 사람이 많이 빠졌다는 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마을의 ‘주기’를 외우게 됐다.
누가 어떤 요일에 약을 주문하고,
누가 매달 첫째 주엔 생수를 받고,
어느 집은 배송함 대신 현관문을 열어 두는지를.
“이젠 주소를 안 봐도 박스 크기만 봐도 누구 건지 알아요.”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효율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몸에 새긴 사람만의 애틋함이었다.
2. 택배차가 들어오면 마을도 움직인다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은 박 씨의 도착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 시작한다.
평소에는 마당에 잘 나오지 않는 어르신들도
이날만큼은 마스크를 쓰고 대문 앞 의자에 앉아 박스를 기다린다.
일종의 ‘배송 대기 시간’이자,
이 마을의 유일한 주간 이벤트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동네에 들어오는 건 이제 종길 씨 택배차 하나예요.
앰뷸런스도 이틀 전 예약해야 오고, 마을버스도 끊긴 지 오래예요.”
박 씨는 배송을 마칠 때마다 이장님 집에 들른다.
택배 확인을 겸해,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얻어 마시는 것도 어느새 습관이 됐다.
그는 말한다.
“내가 여기 오지 않으면 이 동네 사람들, 정말 며칠씩 누구 얼굴도 못 볼 때도 있어요.
말 한마디 못 하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배송지에 도착하면 초인종보다 목소리를 먼저 건넨다.
“○○ 어르신! 나 택배 왔어요!”
그리고 어르신의 “이따 문 열어 놓을 테니 거기 두고 가”라는 말이 창문을 타고 흐른다.
그 대화는 짧지만, 분명히 이 마을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대화다.
그는 택배 기사지만, 동시에 이 마을의 외부 연결선이자,
유일한 정기 방문자이며,
마지막 남은 리듬이다.
그가 지나가면 먼지바람이 일고,
대문이 열리고,
무거운 적막 속에서 작지만 퍼진다.
그 진동이 사라지는 날, 이 마을의 시간도 멈출 것이다.
3. 아이가 없다는 건, 물건도 변한다는 뜻
출산율 0%가 된 이후, 박 씨가 배송하는 물건도 달라졌다.
예전엔 기저귀, 유아용 물티슈, 분유 박스도 자주 들었지만
지금은 혈압계, 파스, 영양제, 의약품이 대부분이다.
비타민D부터 흑염소 진액까지, 박스의 무게와 냄새만으로도
그가 가는 집의 연령대를 짐작할 수 있다.
가끔은 빈집 앞으로도 택배가 도착한다.
도시로 나간 자식이 어르신을 위해 주문한 반찬 박스,
하지만 그 박스는 며칠째 열리지 않고 방치되다
결국 이웃이 수거하는 일이 생긴다.
“가끔은 그런 집을 보면 무섭기도 해요.
문이 안 열리면 괜히 두근거리고,
전화번호도 없어서 그냥 두고 돌아설 때면 찝찝하죠.”
아이 울음이 끊긴 마을은
소비 자체가 고령화된다.
슈퍼는 아기과자 대신 찹쌀과 한방차를 들여놓고,
약국은 항생제보다 혈압약이 더 많이 나간다.
그 변화는 마을 사람만이 아니라,
마을을 드나드는 택배 기사도 피부로 느끼는 변화다.
그는 말한다.
“사람이 늙는 건 이해해요.
근데 마을이 늙는다는 건 좀 다르더라고요.
그건 진짜, 서서히 사라진다는 느낌이에요.”
4. 마지막 박스를 배달하는 날이 오기 전에
박 씨는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이 길을 마지막으로 달리는 날이 언제일까.”
새벽 5시에 차고지에서 트럭에 상자를 싣고,
가장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지역이 바로 이 마을이다.
그는 항상 맨 마지막 노선으로 여길 남긴다.
“다른 동네야 부르면 갈 사람도 있고, 문 앞에도 CCTV 달렸잖아요.
여긴 안 그래요. 그냥 사람이, 사람이 오는 게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최근 들어 택배사 본사에선
노선 재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배송비 대비 수익률이 낮다", "고정 물량이 없고",
"다른 노선과 통합이 필요하다."
그 말들은 박 씨가 알고 있는 마을의 얼굴과 아무 상관 없는 단어들이다.
엑셀 표에는 감정이 없고,
그의 트럭에 실린 박스 위로는 계산기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박 씨는 말한다.
“회사는 당연히 효율을 따지겠죠. 근데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효율’이 전부가 되면, 그다음은 진짜 없어지는 거예요.
여긴 효율보다 기다림이 중요한 동네예요.”
그가 이 마을을 돌며 배달한 박스 중에는
혈압약, 생수, 라면, 겨울 내복, 온열 파스도 있었지만
무게로 환산할 수 없는 박스들도 있었다.
누군가의 걱정, 자식의 마음, 보이지 않는 응원이 담긴 상자들.
어르신들은 그 박스를 열면서 “내 새끼가 이걸 또 보냈구먼” 하고 웃고,
때로는 눈물을 닦는다.
박 씨는 그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는 택배 기사지만, 이 마을과 자식들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한 번은 한 어르신이 손에 작은 봉지를 들고 나왔다.
“종길 씨, 이거… 생강청 좀 담갔어. 감기 조심해.”
그건 돈으로 셈할 수 없는 ‘답장’이었다.
그는 무거운 택배 박스를 들고 갈 때보다,
그 봉지를 트럭에 싣는 순간 더 따뜻해졌다.
그렇게 마을은 아직 조금 살아 있었고,
박 씨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마지막 박스를 들고 이 길을 지나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남지 않아 집이 모두 비게 되고,
이장이 전화를 걸어와 “인제 그만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날.
그날을 박 씨는 조용히 두려워한다.
그는 말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오가는 사람이 되면,
그땐 내가 그 마을 사람들 기억도 같이 가져가야죠.”
출산이 끊기고, 학교가 문을 닫고, 병원이 떠난 마을에서
택배차마저 멈춘다면,
그곳은 진짜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다.
더 이상 택배조차 도착하지 않는 마을은
세상이 ‘잊어도 되는 곳’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 마을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된다.
하지만 아직은 매주 월요일,
트럭 한 대가 진흙 묻은 길을 달려온다.
차가 멈추면 사람도 멈추지만,
트럭이 오면 문이 열리고 누군가 마당에 나선다.
박 씨는 그 한 사람, 그 한마디 인사를 위해
이 먼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집은, 이 마을은, 아직 누군가 기다리는 곳이에요.”
그 기다림 하나로 버티는 마을이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곳은 아직 살아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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