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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반 민속 축제

울산 장생포 고래축제

by around-the-worlds 2025. 7. 27.

울산 장생포 고래축제

지역의 역사 산업과 현대 문화의 결합

1. 장생포, 한국 포경 산업의 중심에서 문화 관광지로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는 한때 한국 포경 산업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20세기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장생포는 남방 큰 돌고래를 포함한 다양한 고래 어종이 포획되던 국내 최대의 포경 기지였다. 일본, 러시아, 노르웨이 등과 함께 포경 선단을 구성했던 당시의 장생포는 수많은 고래잡이 선박과 고래 해체 작업장이 밀집해 있었으며, 포경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공동체와 산업 생태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 포경 금지 조치 이후 한국은 상업적 포경을 전면 중단하게 되었고, 장생포는 급격한 쇠퇴를 겪었다. 포경업의 중단은 지역 경제와 일자리, 공동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장생포는 한동안 침체된 항구 도시로 남게 되었다. 이에 울산시는 포경의 기억을 단순히 과거로 묻는 대신, 이를 문화 자산화하고 관광 자원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장생포 고래축제이다. 울산 남구청이 주최하고, 고래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 축제는 1995년 처음 시작되어, 매년 봄철에 열리는 지역 대표 축제로 성장하였다. 축제의 주 무대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내 고래문화마을과 고래박물관 일대이며,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고래는 이제 산업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상징이자 새로운 지역 문화 콘텐츠로 재구성되고 있다.


2. 산업 기억의 재해석, 고래축제의 콘텐츠 구성

장생포 고래축제는 단순한 해양 축제가 아니라, 산업 유산과 역사 기억을 기반으로 구성된 복합형 문화 콘텐츠로 운영된다. 축제의 핵심은 고래와 관련된 과거의 산업 활동과 공동체 문화를 다양한 형식으로 재현하고, 이를 현대적인 관람과 체험 요소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과거 포경 작업을 모티프로 한 퍼레이드, 고래 조형물 퍼포먼스, 전통 고래 해체 도구 전시, 고래잡이 선단 체험관 등이 있다.

고래잡이 퍼레이드는 지역 청소년과 주민이 참여하는 대표 행사로, 과거 고래 선단의 출항 장면을 의상과 음악, 퍼포먼스로 재구성한다. 또한 고래박물관에서는 실제 포경 시절 사용되었던 장비와 선박, 기록 사진, 해양 포유류 표본 등이 전시되며, 이를 통해 관람객은 산업의 역사성과 생물학적 정보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 어린이 대상의 해양 생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되어, 고래의 서식 환경, 해양 보호의 중요성, 고래 보호 협약 등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고래 관련 음식 문화 콘텐츠도 주목받고 있다. 과거 장생포에서는 고래고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먹었으며, 이러한 음식 문화는 현재 일부 향토 음식점에서 메뉴로 이어지고 있다. 축제 기간에는 고래고기의 대체 식재료를 활용한 체험형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고래라는 소재를 생태 존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도도 병행된다.

또한 고래를 주제로 한 창작극, 미디어아트, 그림책 전시, 체험형 조형물 제작 등이 함께 진행되면서 축제는 단순한 관람 중심 행사를 넘어, 시민 참여와 예술 창작이 결합된 열린 문화 실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울산 장생포 고래축제


3. 지역 경제와 공동체 회복의 축제로서의 기능

장생포 고래축제는 울산 남구 지역의 경제 회복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효과도 갖고 있다. 축제는 단지 외부 관광객 유입에 그치지 않고, 지역 상권과 주민 주도의 경제 활동이 연결되는 구조로 운영된다. 고래문화마을 일대의 상가, 음식점, 공방, 체험장 등은 축제 기간 동안 평균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하며,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와 기획자, 청년 창업가에게는 일시적인 수익과 고정적인 방문객 확보 효과를 제공한다.

울산시는 축제 운영에 있어 주민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프로그램 기획 회의, 운영 인력 채용, 행사 공간 관리 등에서 주민 대표가 참여하며, 일부 행사는 마을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다. 예를 들어 고래연 만들기 체험은 지역 여성회가 주관하고, 고래 줄다리기 놀이는 인근 초등학교와 공동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는 지역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지속 가능한 축제 운영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는 단순한 축제 장소를 넘어 연중 운영되는 문화 복합지구로 조성되어 있다.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등이 상시 운영되며, 고래축제를 통해 유입된 관광객은 비수기에도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유도된다. 울산 남구청은 축제 외에도 고래 콘텐츠 기반의 상설 전시, 교육, 체험, 공연 등을 기획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의 문화 기반 시설과 경제 구조를 안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고래축제를 중심으로 지역 청년들이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과 공예 브랜드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고래와 해양을 주제로 한 상품을 개발하고,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문화 기반 창업을 시도하고 있으며, 고래축제는 이들에게 초기 시장 확보와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4. 역사 자원의 문화 전환과 축제의 지속 가능성

장생포 고래축제는 과거 산업 유산의 문화적 재해석을 통해 지역 재생을 실현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포경이라는 산업은 오늘날 생태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장생포는 이를 그대로 지우는 대신, 역사적 사실을 직면하고 그 위에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축제는 고래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포경 산업의 흔적을 교육적 자원과 문화 콘텐츠로 변환하였다.

울산시는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래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고래를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지역의 기억과 상징으로 해석하고, 이를 예술, 교육, 환경 캠페인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래와 인간의 공존을 주제로 한 환경 미술전, 고래 유물 기록 아카이브화 사업, 해양 생태 캠프 등이 그 일환이다.

또한 울산시는 고래축제를 중심으로 장생포를 고래 문화 거점 도시로 육성하고 있다. 2025년까지 장생포 일대를 문화 복합지구로 확대하고, 국제 고래 문화 포럼, 고래영상아트페스티벌, 해양 생태 디자인 워크숍 등을 연계한 콘텐츠 중심 관광지로 만들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고래축제는 문화 정책의 실험 무대이자, 지역 주민의 삶과 연결된 실질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장생포 고래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흔적을 기억하고 재해석하여 공동체와 문화, 경제가 함께 살아나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축제다. 고래는 이제 잡는 대상이 아니라,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지역의 정체성이자 상징이 되었다. 축제는 그 전환의 과정이며, 장생포는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